보이는 모습, 보이지 않는 모습
조카들이 어렸을 때 일이다.
둘이서 아파트 안에 있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작은 녀석이 누구에겐가 얻어 맞았는지 울면서 집에 들어왔다.
언니가 그 꼴을 보고는 울고 있는 동생 옆에서 멀뚱멀뚱하게 따라들어오는 형에게 소리를 질렀다.
동생이 맞고 있는데 넌 옆에서 뭐 했니?
얘가 잘못했어.
동생이 먼저 잘못했다고 말하는 큰 아들에게 동생 편들지 않았다고 언니는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보아하니 또박또박 말하는 어린 아들의 모습이 그냥 얄미웠나보다.
그 광경을 보면서 어린 아이들의 눈은 옳고 그름이 정확하구나 생각했었다.
우리는 커가면서 중심에 서는 능력을 잃어왔다.
세상에서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유일한 곳, 진리와 정의가 살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가정이더라 하던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잘못이다 말하면 집안이 시끄러워지니까, 집안 조용하게 하기 위해서 그냥 넘어가야 되는 일들이 갈 수록 점점 더 많아진다고 한다.
그것이 사랑일 수 있고 용서일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과 연관이 되어있을 때는 그것은 이미 사랑도 아니고 용서도 아니다.
저울추의 중심이 옮겨져 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일터에 나가야 했던 일용노동자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자 일을 시작하고 세상의 불공평을 알게 되면서,
만일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이 그 상대편에 서게 되면 내가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심각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친정아버지께서 들으시면 섭섭해하실 지 몰라도 아마 나는 반대편에 섰을 것이다.
각자 자기의 소신이 있고 의견이 있는데 가족이란 이름으로,
같은 단체의 이름으로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볼 땐 참 답답하다.
정치인들이 같은 당이란 이유로 감싸는 것을 볼 때면 정말 아이들보다 생각이 많이 모자란 사람들만이 정치를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는 몰라도 누군가를 수없이 험한 말로 대화에 오르내리면서 식사를 하던 어떤 중년부부 옆 테이블에 우연히 앉았다가 그 민망한 대화를 모조리 들으면서 식사를 하게 된 적이 있었다.
거침없이 나오는 격한 말투에 같은 톤으로 맞장구쳐주면서 주거니받거니 하는 그 부부를 보면서 연애할 때도 저렇게 대화를 했었을까 생각했었다.
세월이 어느 한 쪽을 닮아가게 만들었겠지.
얼마전 어느 학교 버스 운전자의 자살 이야기가 신문에 실렸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차의 결함 때문이었는데도 자신이 두 학생을 죽게 만들었다는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제대로 본다면 아마도 모두들 자살하지 않고는 못배길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다 잘 살고 있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 마치고 서울에 들어간 조카까지 합해서 집에 남자가 4 명이었을 때,
매일 벗어놓는 빨래가 항상 산더미였다.
그 중 한 명은 지적해도 절대 고쳐지지 않는 나이가 이미 되어서 그냥 내버려두고 나머지 3 명의 옷은 뒤집어서 벗어놓으면 절대 빨아주지 않고 도로 다 제 방에 던져 놓곤 했었다.
그것을 일년쯤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그런 옷들이 나오지 않았다.
역시 하고 흐믓해 하면서 빨래를 개키던 어느날 ,
문득 보니 어머나 세상에, 처음부터 끝까지 몽땅 다 뒤집혀져 있는 옷이 있었는데 바로 내 옷이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이들이 볼까봐 후닥 감추면서 이번 뿐이겠지,
전에는 그렇지 않았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난 내가 그동안 아이들에게 취했던 행동들을 아이들 앞에서 사죄했어야 맞으니까.
그래야 한다고 속으로는 생각하면서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만 알고 넘어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나는 항상 생각하곤 한다.
그때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내 눈에 내 잘못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들도 나처럼 언젠가는 자신들의 본 모습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상삭적으로 봐도 상대가 잘못하는 것이 확연히 보이는데도 그 사람의 눈에는 자신을 틀린 것이 전혀 없고 내가 다 잘못한 것으로 보이겠지.
한 식구로부터 많은 괴롭힘을 당하고 살고 있는 한 친구의 말이다.
나를 좋다 여기는 사람이 있고 또 누구는 만나면 돌아선다.
내게 잘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돌아서는 사람은 미워할까? 그렇 수 없다.
그 모두들과 더불어 살게 내게 주신 세상이다.
내게 돌을 던져도, 내게 눈을 흘겨도, 내 인사를 받지 않아도
그들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사랑하고 끊임없이 받아주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사람을 아무 것도 바꾸게 할 수 없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바뀌어지지 않았다.
그냥 기다릴 뿐이다.
_차옥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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