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13:8)
요즘 카드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파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한번 빚을 지게되면 이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기 때문에 좀처럼 빚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끝내 파산하여 노숙자로 전락하거나 심지어 가족 이 동반자살을 하는 등의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어린 시절의 일이 떠오르곤 한다.
모친은 가정을 전혀 돌아보지 않는 부친 대신에 행상으로 힘겹게 가정을 꾸려나갔다. 그러다보니 때때로 일수로 돈을 끌어써야 할 때도 있었던 모양이다.
장사가 잘 될 때는 일수 이자를 꼬박꼬박 잘 냈지만 어떨 때는 밀리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집까지 찾아와 고함치는 일수 아주머니의 소리에 어린 나는 주눅이 들곤했다.
철없는 시절이었지만 모친이 돈 때문에 그렇게 당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을 빌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제활동을 하려면 상호간에 필요에 따라 돈거래를 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철저하게 신용을 지켜야 할것이다.
그런데 개중에는 빌려준 자의 은혜를 잊고 갚을 능력이 있으면서도 갚지 않는 철면피들도 있는 모양이다.
때때로 빌린 사실을 망각하여 갚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남에게 빌려준 것들은 아주 작은 것도 오랫동안 기억해 내면서 자신이 남에게 빌린 것은 곧잘 잊어버린다.
그러다보니 가까운 사이에서 작은 것을 빌려주고 되돌려 받지 못할 때 추궁도 못하고 속알이만 하다가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친구 사이에는 돈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정말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에게 빌려줘야 할 경우가 생긴다면 아예 못받을 각오를 하고 빌려주는 것이 제일 상책일 것이다.
빌려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은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다.
돈을 빌리고도 갚을 능력이 없어 갚지 못할 때 그 당사자의 마음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오죽 했으면 빚진 죄인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뒤늦게 안 일이지만 모친은 일수 아주머니의 성화에 견디지 못하여 교회 집사님에게 몫돈을 빌려 원금과 이자를 갚으신 모양이다.
어느날 방 청소를 하던 나는 한쪽에 놓여있는 쪽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탕감증서였다.
모친이 그 집사님에게 빌려간 돈(제법 큰 돈으로 생각됨) 전부를 탕감해 준다는 증서였다.
나는 그 증서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직도 내 모친과 그 집사님(지금은 장로님이 되셨음)은 내가 그러한 일을 모르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고리대금으로 거부가 된 채권자들이 가난한 채무자를 위협하고 폭행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그 위협에 견디지 못하여 자신의 장기를 팔고 심지어 목숨까지 끊어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탕감증서를 써 주신 그분의 아름다운 마음을 우리 모친은 잊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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